세상에 잡놈은 있어도 잡버섯은 없다…이름 보면 맛이 느껴진다

[푸드]by 경향신문

괴산군 청천면 버섯시장


능이·송이 1kg 20만원 전후

다른 버섯은 2만~3만원대

싸리·밀·밤·먹…다양한 식감

먹버섯은 고기 생각 안 날 정도


여럿이 즐기러 가면 전골 추천

혼자 여행 땐 육개장으로 충분

민물 새우 ‘새뱅이’ 단맛 매력

‘부드러운’ 초정리 탄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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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금값이던 송이 가격이 반의반으로 떨어졌다. 사실 송이 맛은 추석이 지나야 더 좋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시장에 이 무렵이면 맛있는 버섯이 모인다.

추석이 지나 나뭇잎이 물들기 전, 나무 밑은 온갖 버섯으로 먼저 단풍이 든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섯은 1900여종. 그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400가지라 한다. 먹을 수 있는 야생버섯은 사람의 편리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재배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전자의 대표는 표고, 후자는 송이다. 표고는 죽은 나무에서 사는 버섯이고, 송이는 살아있는 나무에서 자란다. 살아있는 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양식이 힘들다. 송이가 비싼 까닭이다.


추석 무렵 송이 가격은 금값이다. 1㎏에 수십만원씩 한다. 추석이 지나면 반의반 값이 된다. 찾는 이는 줄고 생산량은 늘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다. 송이 맛은 사실 추석이 지나야 더 좋다. 송이는 단풍 따라 차가운 북쪽부터 남하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경북 영덕·봉화·영양에서 가장 많이 난다. 400가지 버섯 중에서 일(一) 능이, 이(二) 송이, 삼(三) 표고 식으로 순서를 정하고는 나머지는 잡버섯이라고 한다. 퉁쳐서 잡버섯이라고 하는 것도 저마다의 이름과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일 능이, 이 송이 이런 말들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거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생산지를 다니다 보면 세상에 잡놈은 있어도 잡버섯은 없었다. 잡초·잡어와 마찬가지다. 사람이 제 필요에 따라 그렇게 구분 지어 부를 뿐이다.

야생버섯 다 모이는 시장

맛있는 버섯이 모이는 장터가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시장이다. 예전에 괴산은 서울에서 체감거리가 멀었다. 2000년 괴산군 소수면의 고추씨기름과 참기름 생산 공장을 가끔 갔다. 거리는 대구 가는 길의 반 정도지만 시간은 얼추 비슷했다. 중부고속도로 대소나들목을 빠져나와 음성읍을 지나 37번 국도를 20여분 달려야 괴산군 소수면이 나왔다. 아침 9시에 출발하면 낮 12시에 도착했다.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4차선 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려 있어 오가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오랜만에 찾은 괴산 땅은 아침 안개와 코스모스가 반겼다. 19년 전에도 공사 중이던 37번 국도 4차선 확장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산지를 참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오래 공사하는 길은 못 봤다. 비슷한 길이 하나 더 있다. 하동과 남해 구간도 꽤 오래 공사하고 있는 도로다.


괴산군 청천시장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야생버섯 시장이다. 비록 시장 규모는 큰 도로가 생기면서 읍내 산막이시장에 빼앗겼지만, 버섯 하면 여전히 청천시장이다. 더 이상 오일장은 서지 않지만 가을에는 매일 버섯장이 선다. 면사무소 중심으로 형성된 상가는 ‘버섯 판’이다. 버섯을 팔거나 버섯요리를 팔거나 둘 중 하나다. 버섯 파는 곳의 모양새는 같다. 데친 싸리버섯, 밀버섯(외대덧버섯), 밤버섯(개암버섯), 먹버섯(까치버섯) 등을 흐르는 물에 담가 독성을 빼고 진열한 모양새가 똑같다. 데치지 않은 것도 판매하지만 상인들은 보통 손질한 것을 권한다. 집에서 제대로 독성을 빼지 않으면 아린 맛이 나기 때문이다. 청천토박이(043-832-6362)


싸리버섯을 비롯한 버섯들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능이나 송이가 1㎏에 20만원 전후(추석 이후 중품 이하 기준)라면 다른 버섯은 2만~3만원대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맛까지 저렴하지는 않다. 먹버섯만 하더라도 독특한 향과 식감 때문에 요리사들이 즐겨 쓰는 야생버섯 중 하나다. 손질한 버섯으로 고기 없이 잡채를 만들어도 고기 생각이 안 난다. 쫄깃한 식감이 버섯마다 달라 먹는 재미가 남다르기에 고기 찾을 일이 없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끓일 때 조금씩 넣으면 ‘인생 찌개’가 된다.


식재료를 알면 맛이 보인다. 잡버섯이라고 부르면 2만원짜리 버섯으로 끝난다. 그러나 싸리며, 밀이며, 밤이며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저마다 가진 특유의 맛과 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 능이 못지않은 맛으로 말이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맛이 특별해지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혼행족을 위한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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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나 능이와 달리 ‘잡버섯’으로 분류되는 싸리·먹·밤버섯이 맛까지 저렴하진 않다(위), 괴산에선 버섯육개장을 먹어야 하는데 8000원 한 그릇에 야생버섯이 섭섭지 않게 들었다(가운데), 작은 민물 새우인 새뱅이가 내는 매운탕 국물 맛은 큰 새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야생버섯은 함부로 따거나 먹어서는 안된다. 사유지에서 따면 절도이고, 주인 없는 산이라도 잘못 따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 야생버섯을 따서 먹고 식중독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중독되었다고 한다. 혼자 죽지 않겠다는 심보는 아니겠지만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버섯을 먹고 이상 증상을 느낄 때 해야 하는 행동요령이 있다. 첫째, 119에 전화를 한다. 둘째, 환자 의식이 있으면 물을 마시고 토하게 한다. 세 번째가 중요하다. 별표 다섯 개다. 먹은 버섯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환자와 함께 병원에 보내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알고 치료할 수 있다. 세 번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부로 따지도, 먹지도 않는 것이다.


청천면 소재지는 작다. 걸어서 7~8분 이내에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청천면에서 즐길 수 있는 버섯요리는 여럿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전골이 대세다. 여럿이 즐기기는 좋으나 필자처럼 혼자 다니는 여행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혼자 여행하는 ‘혼여’ 혹은 ‘혼행’이 꽤 늘었는데도 전골은 여전히 메뉴판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야생버섯 맛은 혼자 먹는 육개장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예전에는 버섯짬뽕 파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은 치킨집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버섯육개장 파는 곳은 아직 남아 있다. 보통의 육개장과 만드는 방식과 모양새는 같다. 다른 점은 잘게 자른 야생버섯이 8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섭섭지 않게 들어 있다. 살짝 얼큰한 맛의 육개장과 같이 나오는 밥의 궁합이 예술이다. 식당의 기본은 밥맛이다. 전주식당은 기본에 충실한 식당이다. 육개장의 맛을 설명하면 입만 아프다. 전골은 다른 곳의 대·중·소 크기와 달리 1인분 단위로도 판다. 물론 기본 주문은 2인분 이상이라 먹지 못했다. 전주식당(043-832-0369)

구수하고 달고 시원한 새우

속리산을 남쪽 배경으로 삼고 있는 괴산군은 화양계곡을 비롯해 이름난 계곡들이 많다. 계곡물이 만나 달천이 되고, 종국에는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에는 항상 다슬기 파는 곳이 많다. 괴산도 야생버섯 파는 곳에서 같이 파는 것이 다슬기 요리일 정도로 많다. 특정 음식이 유명한 곳에 으레 그 음식을 먹으러 가지만 살짝 고개만 돌리면 조금 더 특별한 음식이 있다. 새뱅이라 부르는 민물 새우가 있다. 커봐야 3㎝도 안되는 작은 민물 새우인데, 매운탕을 끓이면 구수한 맛과 단맛이 매력이다. 새뱅이 매운탕은 시원한 매력 한 가지가 더해진 매운탕이다. 작은 새우 한 마리가 내는 시원함은 별거 아니지만 모아놓으면 그 맛은 큰 새우가 한 수 밀린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충주, 괴산 등지를 비롯해 큰 호수가 있는 내륙 지역에서 맛볼 수 있다. 작은 새우라 무시하고 넘어가면 인생 새우 하나를 놓친다. 일부러 찾아서도 먹어야 할 맛이다. 즐거운날(043-833-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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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괴산에서 열린 유기농박람회에 왔다가 우연히 들른 집이 있었다. 돼지갈비 좋아하는 딸과 동행한 길이라 읍내에 있는 정육식당에 ‘돼지갈비’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 아침마다 갈비 포를 뜨고, 양념해서 내었다. 이번 출장에 몇 년 만에 다시 맛을 보겠구나 싶었는데 맛을 못 봤다. 주인이 나이 들어 식당 일이 버거워 문 닫고 이사 갔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돼지고기만 파는 식당으로 갔다. 지역에서 나는 돼지고기와 채소, 쌀로 음식을 내는 곳이다. 석갈비를 주문했다. 갈비는 불맛 나게 잘 구운 다음 뜨거운 돌판 위에 올려 나온다. 밥 먹을 때 물이나 음료를 잘 마시지 않는다. 여기서는 초정리 탄산수 한 병은 꼭 주문해야 한다. 초정리 탄산수는 전국 편의점에서도 팔리지만, 이 동네에서는 병에 든 탄산수다. 모양도 예쁘거니와 맛도 기분 때문인지 부드럽다. 동네 사람들이 들어와서 별 고민 없이 바로 돈가스를 주문한다. 뒤에 들어온 다른 손님도 똑같이 주문한다. 나오는 모양새나 주문하는 모양새를 보니 나도 다음에는 돈가스다. 한도니(043-838-6090)


농산물이든 수산물이든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가격이 오른다. 사람들 관심이 멀어지면 자연스레 가격이 내려간다. 여름철 민어만 하더라도 가격이 한창 때의 반의반 값이다. 그렇다고 맛까지 반의반은 아니다. 송이와 능이는 누구나 아는 버섯이다. 누군가가 많이 이야기했기에 많이 알 뿐이지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맛은 순위 정하기가 어렵다. 만화가 허영만 선생은 <식객>에서 “세상의 어머니 숫자만큼 맛은 다양하다”고 했다. 식재료에 제 이름을 찾아줄수록 맛이 다양해진다는 것, 산지 다닌 24년 동안 터득한 진리다.


김진영 식품 MD

2019.10.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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