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양상추와 저염식'
![]() 전호제 셰프. ⓒ News1 |
가끔 주방에서 목이 마를 때 양상추 한두조각을 입에 넣는다. 물 한 잔만큼이나 시원함이 꽤 좋다. 성분을 분석해 보면 96%가 물이라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부분의 채소가 물이 주성분이라지만, 특히 양상추가 다른 채소에 비해 항상 아삭함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샐러드 채소를 비교해 보면 로메인은 95%, 케일은 94%이니 양상추의 수분함량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살려 칼로리는 낮추고 수분함량을 높이는 저염식에 응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양상추나 샐러드 채소를 매끼 점심으로 먹기 시작한 것도 저염식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주방에서 수시로 국물 간을 보니 마치 짠 음식을 많이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매끼 간을 하지 않은 양상추나 샐러드 채소를 곁들이는 것이다.
미국 파인다이닝에서 일할 때 손님의 특별요청 중 양상추의 덕을 본 기억이 난다. 이 손님은 비건에 소금없는 식사를 요청하였다. 우리가 가진 재료는 대부분 육류에 간이 된 소스나 지방이 들어가 있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이때 한 수셰프가 나에게 아래 주방에서 양상추, 양송이, 셀러리를 챙겨오라고 했다. 그다음엔 날카로운 칼로 잘게 잘라내어 섞었다. 마지막으로 30년 숙성된 발사믹 식초만으로 잘 버무렸다. 발사믹 식초는 숙성기간이 길수록 자연 단맛이 있고 점점 끈적해진다.
황급히 손님께 나가고 남은 샐러드 맛을 보았다. 양상추, 버섯, 허브에 각종 야채가 섞여 꽤 좋은 조합이 됐고 30년 숙성 발사믹 식초가 고급스러운 단맛을 주었다. 몇 분 후 그 테이블의 담당 웨이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님이 너무나 만족하신다는 얘기도 전해주었다.
양상추의 이름은 영어로 'iceberg lettuce'라고 한다. 1928년에 양상추를 기차에 실어 운반할 때 1000톤의 얼음을 넣어 신선도를 유지했다는 데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Iceberg가 빙하라는 뜻도 있으니, 요즘처럼 빙하가 녹는 시대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이름이 되었다.
양상추는 기후변화로 가격이 폭등하곤 한다. 작년에도 주먹만 한 양상추에 4000원 정도 들어와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양상추 가격이 오르면 보관에 더 신경이 쓰인다. 일단 한번 잘린 단면엔 하루만 지나면 누런 변색이 생긴다. 마트에 파는 모듬 샐러드 야채를 구입하면 항상 먼저 색이 변하는 야채이기도 하다.
이런 변색은 공기와 접촉으로 생기니 이미 잘라내었다면 물속에 담가두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겉잎을 벗겨낸 다음에는 랩으로 잘 감싸서 보관하는 게 좋다.
어떤 분은 양상추는 맛도 밋밋하고 다른 녹색 샐러드 야채만큼 영양도 풍부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삭한 식감과 다른 야채와 어울림은 양상추만의 매력이다. 또 짜게 먹는 습관이 있다면 양상추로 가벼운 저염식을 시도해 보는 것을 권해드린다.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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