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리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가 싫다면 산타바바라를 주목하라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와인영화 ‘사이드웨이’ 주인공 마일스가 찾아간 와인 산지

‘횡단계곡’ 덕분 나파밸리 보다 더 서늘한 기후 지녀

과일향 충실 샤르도네와·피노누아 산지로 명성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와인생산자연합 10개 와이너리 한국 찾아 매력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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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찾은 산타바바라 와인 생산자들. 최현태 기자

2004년 개봉된 와인 영화 ‘사이드 웨이(Sideways)’. 이혼한 뒤 후유증을 와인으로 달래는 영어 교사 마일스(폴 지어마티)와 그의 절친 3류 배우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은 잭의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를 겸해 도심을 벗어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지로 여행을 떠납니다. 마일스는 와이너리로 향하는 자동차안에서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를 만드는 양조방식이 싫어! 오크를 너무 과도하게 쓰는데다 젖산발효까지 하거든! 그런데 여기는 괜찮을 거야”이라고 잭에게 얘기합니다. 마일스가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표지판에 적힌 지명은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가 마을 산타 바바라 카운티(Santa Barbara County). 마일스는 왜 산타바바라 와인은 괜찮다고 말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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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바바라와인생산자연합 Alison Laslett 대표.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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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요 와인 산지.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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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바바라 AVA. 협회

◆ 미국 와인은 버터리하다?

미국 샤르도네는 보통 오키(Oaky)하다, 버터리(Buttery) 하다고 많이 얘기합니다. 오크향이 너무 강하고 버터 맛처럼 느끼하다는 뜻입니다. 오크에는 탄수화물 성분이 많은데 오크통 제작과정에서 내부를 불에 많이 태울수록 바닐라, 토스트 향이 많아집니다. 프렌치 오크는 토스트와 바닐라 풍미가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반면 미국 오크는 탄수화물 비중이 더 높아 조금 더 단맛이 강합니다. 또 스파이시하면서도 바닐라, 코코넛, 초콜릿, 풍미가 강하고 딜향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미국산 오크를 많이 쓰는 와인들이 좀 더 오키하고, 버터리하게 느껴지는 이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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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밸리.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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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클리마 오너 패밀리 Isabelle Clendenen.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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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봉 클리마 와인. 최현태 기자

젖산발효(말로라틱 퍼먼테이션·malo-lactic fermentation)는 사과산을 젖산발효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양조과정에서 포도를 발효하면 시큼하고 날카로운 산이 만들어집니다. 포도 과육에 원래부터 있던 사과산으로 효모가 당분을 알코올로 바꾸지만 사과산은 그대로 남습니다. 적당한 산도는 와인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너무 과하면 시큼한 맛만 강조됩니다. 따라서 2차 발효인 젖산 발효 과정을 거치는데 날카로운 사과산(L-malic acid)이 우유맛, 요거트, 치즈 풍미가 담긴 부드러운 젖산(lactic acid)으로 변합니다. 젖산발효는 1차 발효가 끝난 뒤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젖산발효를 더 잘하고 싶다면 오크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박테리아를 살짝 넣어주면서 스틸탱크에서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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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어 클리프턴 오너 겸 와인메이커 Greg Brewer.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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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어 클리프턴 와인. 최현태 기자

그런데 말로라틱을 너무 과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포도 본연의 순수한 과일 맛은 그만 사라지고 맙니다. 산도가 낮고 버터리한 향만 강조되는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적당한 화장은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만 너무 짙게 화장을 하면 원래 얼굴은 없어지고 누군지 모르는 분장의 수준이 돼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말로라틱을 적게 하거나 화이트 와인은 말로라틱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전세계적인 양조 트렌드랍니다. 이산화항(So2)을 넣어 박테리아를 모두 죽이면 젖산발효가 회피됩니다. 또 발효 과정에서 온도를 뚝 떨어뜨리면 발효가 멈추고 박테리아의 활동도 모두 정지됩니다. 이때 필터링으로 박테리아를 걸러내면 젖산발효 없이 발효가 끝납니다. 소비뇽 블랑, 리슬링 등 산도가 높고 강렬한 풍미가 많이 나는 품종들은 산도와 풍미를 살리기 위해 젖산발효를 거의 하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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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버그 오너 Jia Min Direberg(오른쪽)과 와인메이커 Tyler Thomas.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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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버그와 스타레인.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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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바바라 카운티 횡단계곡. 협회

◆ 횡단계곡이 만드는 서늘한 기후

그렇다면 마일스는 왜 산타바바라로 향했을까요. 캘리포니아 대표 산지 노스코스트의 나파밸리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센트럴코스트의 산타바바라는 튀니지와 같은 위도여서 강렬한 태양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바다와 근접한 와인 산지여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계곡을 따라 들어오는 안개 덕분에 나파밸리 보다 훨씬 더 서늘합니다. 시원한 기후를 좋아하는 샤르도네와 피노누아가 산타바바라에 잘 자라는 이유랍니다. 바로 ‘횡단 계곡(Transverse Valley)’으로 부르는 독특한 지형덕분입니다. 캘리포니아 대부분의 와인 산지에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산맥이 있어 계곡에 열기가 가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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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 파커 수출세일즈매니저 Spencer Shull.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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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 파커 와인. 최현태 기자

반면 산타바바라는 계곡이 바다에서 동서 방향으로 65km 가량 아주 길게 이어집니다. 이 계곡을 따라 바다의 서늘한 기운이 쑥쑥 잘 들어오고 안개도 잘 형성됩니다. 오전에는 서늘한 안개가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 정오가 되면 사라지고 오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주기에 뛰어난 품질의 샤르도네와 피노누아가 생산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제공합니다. 더구나 산타바바라는 갑작스런 기후 변동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포도 생산자들이 어떤 포도가 수확될지 충분히 예측 가능할 정도로 안정적인 기후라는 점도 포도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노스코스트 소노마 카운티의 대표적인 샤르도네, 피노누아 산지가 러시안리버밸리인데, 이곳 와인은 좀 더 볼륨감이 크고 선이 굵은 반면 산타바바라는 산도가 뛰어나고 세이보리하면서 신선함이 더 강조되는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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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포인트 에스테이트 디렉터 AJ Fairbanks. 최현태 기자

◆ 바다가 만든 미네랄 토양

산타바바라는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융기된 지역중 하나로 해양 화석이 풍부해 미네랄이 뛰어나다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오래전 대륙이 이동할때 나파밸리는 바다의 지각판이 아래로 들어가면서 형성됐기 때문에 산의 토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산타바바라는 바다의 토양이 산 토양 위로 올라오면 형성됐기에 라임스톤과 비슷하면서 석영 토양이 좀 더 많이 섞인 실리카 토양으로 이뤄져 미네랄이 매우 풍부합니다. 나파밸리와 소노마는 화산 모래가 섞여있어서 영양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파워풀한 포도가 잘 자라고 송이도 굵어집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잘 자라는 이유입니다. 반면 피노누아는 이런 토양을 싫어합니다. 산타바바라는 땅 아래 물도 찾기 어려운 척박한 토양이라 포도알이 작아져 집중도가 뛰어난 포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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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고리아 오너 A.Brooke Christian.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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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고리아 와인. 최현태 기자

◆ 산타바바라 AVA

산타바바라는 1782년 스페인계 수도사들이 포도재배를 시작하면 와인의 역사가 시작됐지만 금주령으로 궤멸됐다 1970∼1980년대에 포도나무를 다시 심으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현재 포도밭은 약 4450ha로 75종 가량의 품종이 재배되며 대표 품종은 샤르도네, 피노누아, 시라, 소비뇽블랑, 카베르네소비뇽입니다.


산타 마리아 밸리(Santa Maria Valley)는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첫 번재 AVA로 뛰어난 샤르도네, 피노누아가 생산됩니다. 특히 산타마리아 비엔나시도(Bien Nacido) 빈야드를 최고의 포도밭으로 꼽습니다. 산타 리타 힐스(Santa Rita Hills)는 태평양과 가까워 안개 자욱한 아침이 이어지고 정오에는 햇살이 비칩니다. 거의 시계처럼 정확하게 이른 오후에 해풍이 다시 불어옵니다. 규조토와 석회암이 섞인 퇴적 토양이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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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럼 오너 Douglas Barden Margerum.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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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럼 와인. 최현태 기자

발라드 캐년은(Ballard Canyon) 시라가 주품종이며 그르나슈, 비오니에, 루산느 등 프랑스 론 품종들이 잘 자랍니다. 가장 내륙쪽인 해피 캐년(Happy Canyon)은 여름철 섭씨 29~35도의 따뜻한 기후 덕분에 늦게 익는 만생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을 재배하기 이상적인 곳입니다. 또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소비뇽 블랑 등 보르도 품종 재배에 적합합니다. 가장 최근 AVA를 받은 로스 올리보스 지구(Los Olivos District) 소비뇽 블랑을 주로 재배하며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 론 품종과 스페인 및 이탈리아 품종도 재배됩니다. 테이스팅룸 50여가 이곳에 몰려 있어 와인여행지로 인기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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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9 오너 James Ontiveros.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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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9 와인. 최현태 기자

면적이 가장 큰 산타 이네즈 밸리(Santa Ynez Valley)는 동서로 길게 뻗은 산지로 가장 다양한 품종이 재배됩니다. 서쪽의 피노누아부터 동쪽의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소비뇽블랑까지 다양한 품종이 잘 자랍니다. 또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루산느, 비오니에와 같은 론 품종도 재배됩니다. 2020년 AVA로 지정된 알리소스 캐년(Alosos Canyon)은 시라, 그르나슈, 비오니에, 카베르네 프랑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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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퀼 내셔널세일즈매니저 Tony CHA.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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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퀼 와인. 최현태 기자

◆ 산타바바라 빈트너스 한국 첫 방문

캘리포니아와인협회(California Wine Institute, CWI)는 매년 대규모 시음행사 캘리포니아 얼라이브 테이스팅(California Wines Alive Tasting)을 한국에서 개최합니다. 27일 열린 올해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습니다. 국내 수입사 40개, 한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는 미수입 와이너리 4곳, 그리고 산타 바바라의 와이너리 10곳 등 147개 캘리포니아 와인 브랜드가 500여종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CWI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다양성을 소개하기 위해 매해 테마 와인 산지를 선정하는데 2022년 로다이(Lodi), 2023년 웨스트 소노마 코스트(West Sonoma Coast), 2024년 파소 로블스(Paso Robles)에 이어 올해의 테마 와인 산지는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입니다. 유명 와인전문매체 와인 인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가 ‘2021년 올해의 와인 산지’로 선정한 곳으로 산타바바라와인생산자연합(Santa Barbara Vintners Alliance, SBVA) 앨리슨 라슬렛(Alison Laslett) 대표와 소속 와이너리 10곳의 오너와 와인메이커 등이 한국을 직접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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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바바라 와인 마스터 클래스.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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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얼라이브 테이스팅 2025. 최현태 기자

와이너리는 산타바바라의 매력을 세상에 알린 선구자 오 봉 클리마(Au Bon Climat)를 비롯해 브루어 클리프턴(Brewer Clifton), 크라운 포인트(Crown Point), 디어버그 & 스타 레인(Dierberg & Star Lane), 페스 파커(Fess Parker), 라바지(LaBarge), 롱고리아(Longoria), 마제럼(Margerum), 네이티브 9(Native 9), 프레스퀼(Presquil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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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지 와인. 최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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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당 한식 카나페. 최현태 기자

SBVA는 캘리포니아 와인 얼라이브 테이스팅 행사장에 별도의 테마 시음 부스를 설치하고 마스터 클래스도 진행해 산타바바라 와인의 매력을 전했습니다. 또 28일 미국 최초 미슐랭 가이드 3스타 한식당이자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서 2스타를 받은 파인다이닝 정식당에서 운영하는 정식스페이스에서 다양한 한식 카나페에 산타 바바라 와인을 곁들이는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지난해 제23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 결선에서 우승한 정식당의 김민준 헤드 소믈리에가 산타바바라 와인과 잘 어울리는 한식 카나페 매칭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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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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