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까지 따뜻해지는 곰탕, 명동 ‘하동관’
맑고 깊은 한우 국물로 86년간 사랑받은 명동 노포 ‘하동관’. 잡내 없이 깔끔한 서울식 곰탕, 그야말로 "양반의 음식"입니다.
86년 세월을 끓여온 전설의 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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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 골목 안, 2층짜리 한옥 기와지붕 아래 ‘하동관’이라는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1939년 청계천 수하동에서 문을 연 하동관은 도시 재개발로 2007년 이곳 명동으로 옮겨온 이후로도 80여 년이 넘는 전통의 맛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가게 입구에는 옛 수하동 시절 사용했던 나무 대문이 그대로 걸려 있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이 집은 ‘서울식 곰탕’ 하나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북촌마을의 반갓집 딸로 태어난 1대 창업주 류창희 할머니의 손에서 태어난 반가의 맛은 시대를 이어오면서 ‘서울식 곰탕’의 표준이 되었다.
한 가지 메뉴, 하나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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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관의 메뉴는 메인인 곰탕과 곁들이기 좋은 수육, 오직 두 가지뿐이다. “단출한 메뉴에 담긴 음식점의 프라이드(pride)가 느껴진다”는 말처럼, 하동관은 하나의 음식을 최고로 만들어내겠다는 고집이 담긴 곳이다.
곰탕 국물에는 잡다한 재료 없이 국내산 한우 암소의 살코기와 사골, 그리고 내장만을 사용한다. 하동관 측 설명에 따르면 한우 사골과 양지를 푹 고아 기본 육수를 내고, 거기에 곱창, 대창, 양 등 내장을 아낌없이 넣어 깊은 풍미를 더한다.
특히 “곤자소니”라 불리는 소 창자의 말단 부분(기름기가 많은 특수 부위)까지 꼭 함께 넣는 것이 이 집만의 비법이라 한다. 이렇게 우러난 국물은 맑고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감칠맛을 내며, 오래 고은 국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단맛까지 배어 나온다. 오랜 시간 이어온 이 전통 비법 덕분에 하동관 곰탕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맛을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하동관은 “중탕(重湯)이나 재탕을 하지 않는다.”, 즉 한 번 우러난 국물을 다시 쓰지 않고 그날 끓인 국물만 사용해 매일 처음 같은 신선한 맛을 낸다고 강조한다. 메뉴가 오로지 하나이기에 가능한 정성이다.
유리거울처럼 깨끗한 반가의 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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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관의 곰탕은 전통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토렴을 거쳐 약 70도 정도로 국물온도를 맞추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바로 입에 넣어도 될 정도로 은은히 따뜻한 편. 맑은 국물 속에는 이미 잘 퍼진 쌀밥이 말아져 숨어 있고, 표면에는 고기 기름이 살짝 떠 있다.
그 위로 얇게 썬 한우 양지머리 수육과 내포가 가지런히 손님을 반긴다. 국물 색은 마치 유리거울처럼 투명한 편인데, 맛은 결코 옅지 않다. 수십 년간 매일같이 고아낸 국물은 맑은 황금빛을 띠며, 숟가락을 떠 입에 가져가면 소고기 특유의 구수한 육향이 퍼진다. 잡내라고는 없이 깨끗한 감칠맛에 먼저 감탄하게 되고, 뒤이어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과 묵직한 여운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처음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내 혀끝에서 깊은 풍미가 피어나는 진국이다. 여기서 ‘내포’라는 표현은 ‘내장의 순화어’, ‘내장 포함’ 등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하동관에서는 ‘내장을 삶아 얇게 포를 뜬 것’을 줄여 말한다고 설명한다.
소의 첫 번째 위인 양과 곱창 등을 올려내는 내포는 쫄깃쫄깃한 식감으로 먹는 재미를 더해 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담그는 깍두기도 곰탕과 합이 좋은데, 서울식 레시피로 새우젓만 넣어 만들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좋다.
‘통닭’에 ‘깍국’, ‘냉수’도 한잔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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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까지 가득 담긴 하동관 곰탕 특(特) 한 그릇. 하동관에서는 곰탕 한 종류만을 팔지만, 주문 방식은 제법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숫자로 부르는 주문법이다. 하동관의 곰탕 가격대는 고기와 내장의 양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를 손님들끼리 “~공(共)”으로 줄여 부르곤 한다. 이를테면 “25공”은 가격 25,000원의 푸짐한 곰탕을 가리키는 것. 또 오랜 단골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은어들도 있다.
▲ 맛배기: 밥 양을 줄이는 대신 고기를 더 넣는 것
▲ 깍국: 깍두기 국물. 깍국을 청하면 직원이 깍두기 국물을 큼직한 주전자 채 들고와 직접 부어 준다.
▲ 통닭: 뜨거운 곰탕 국물에 날달걀을 통째로 풀어 넣는 것. 달걀을 깨 넣으면 국물이 한층 걸쭉하고 부드러워진다. 술 한잔한 다음 날 속풀이로 찾는 단골들이 많다.
▲ 냉수: 얼핏 차가운 물을 뜻하는 것 같지만, 하동관에서 냉수는 글라스에 반쯤 채운 소주 한 잔이다. 맑은 소주를 냉수처럼 들이켜는 직장인의 해학에서 나온 주문.
이러한 재미난 은어들은 오랜 세월 하동관을 드나든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문화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각자 취향에 따라 곰탕을 즐기는 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방문한 손님들도 옆 테이블의 노련한 주문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어느새 그 독특한 풍습을 따라 해보게 된다. 하동관의 곰탕 한 그릇에는 이렇게 사람 사이의 정과 추억까지 푹 우러나 있는 것이다.
세대를 이어 지켜온 손맛과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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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관의 깊은 맛에는 여러 사람들의 고집과 정성이 스며 있다. 국물 맛의 바탕이 되는 한우 암소고기는 ‘팔판 정육점’ 한 집에서만 들여오고 있다. 이 정육점은 몇 해전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조명되기도 했는데, 고기 장인이 선별한 최고 품질의 한우 암소 고기로 만드니 곰탕 맛은 없을 래야 없을 수가 없다.
이런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한결 같은 맛이 유지된다. 또한 청계천 변 수하동 시절부터 하동관의 국솥을 담당해 온 3대 사장 김희영 할머니는 그날그날 들어온 고기와 내장 상태에 따라 조리 시간에 차등을 둔다. 오랜 세월 경험한 육감이다.
국솥 앞을 지키는 동안 할머니의 머리칼은 희끗해졌지만, 국물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처음 장작불을 지필 때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들의 땀방울과 장인 정신이 국물 한 국자마다 녹아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예전과 같은 맛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세월이 바뀌어도 그때 그 자리에서 같은 맛으로 손님을 맞이해주는 하동관이 있기에, 바쁜 현대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의 허기도 달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음식이 단순한 끼니를 넘어 추억과 위로가 된다.
한 그릇 곰탕에 담긴 위로와 추억
하동관의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속이 든든해짐과 동시에 왠지 모를 훈훈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속을 달래주었을 이 국물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쌓여온 정성과 신뢰, 그리고 그 국물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명동 한복판,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하동관은 변하는 도시 속에서도 옛 맛과 정서를 지켜온 시간의 섬 같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이 집 곰탕 때문에 멀리 떠나지 못한다”는 웃음 섞인 찬사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오늘도 하동관의 문을 나서며 깊은 감사와 포만감을 느낀다.
국물 한 숟갈에 담긴 진심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도 데워줄 수 있다는 것을, 노포 기행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따뜻한 곰탕 국물처럼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86년 전통 노포의 문을 조용히 닫는다.
▲ 상호: 하동관
▲ 주소: 서울 중구 명동9길 12
▲ 식신 별등급: 3스타
▲ 영업시간: 월~토 07:00-16:00 (재료 소진 시 종료), 매주 일요일 휴무
▲ 추천메뉴와 가격: 곰탕(일반) 1만8000원, 25공 2만5000원, 30공 3만원
▲ 식신 ‘484088’님의 리뷰: 처음에는 국물이 심심한 듯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한우 고기도 부족하지는 않고 김치와 깍두기만으로도 전체 조합이 군더더기 없이 몸 호강하는 느낌입니다. 국물은 부족하면 리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