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의 마침표, 페어링

술 궁합까지 완벽해야 진짜 파인 다이닝입니다. 밍글스·주052·하시라·솔밤이 선보이는 정교한 주류 페어링과 미식의 깊이를 소개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술 한 모금, 이보다 직관적인 미식의 즐거움이 있을까.

주류 페어링의 진면모를 보여 주는 레스토랑 네 곳.

한국적 국물과 샤르도네의 조화
밍글스

전통주 마타리 © 밍글스

한국 유일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밍글스의 철학은 ‘조화’와 ‘균형’이다. 술이 요리를 압도하지 않고, 요리가 술을 덮지 않는다. 서로의 결을 읽고 한 접시의 감정선을 완성한다.


페어링 옵션은 네 가지다. 모든 코스에 주류가 따라가는 시그너처 페어링, 전통주 중심의 ‘우리 술 페어링’, 하이엔드 와인으로 구성된 ‘셀렉티드 페어링’, 그리고 부담 없는 ‘4잔 페어링(4 Glasses Pairing)’까지. 그중 취향과 식사 목적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인상적인 건 밍글스 김민성 소믈리에가 와인 리스트를 구성할 때 ‘가격’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금 구조상 와인 가격이 높다. 그런 환경에서도 손님이 ‘밍글스에서 마신 와인은 언제나 맛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 밍글스

밍글스 시그너처 메뉴 밍글링 팟 © 밍글스

밍글스의 페어링은 교과서를 닮았다. 다양성 속 질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배려. 그리고 정확한 한 잔. 미쉐린 3스타의 자존심이 술잔에도 담긴다.


시그너처 메뉴 ‘밍글링 팟(Mingling Pot)’은 밍글스 철학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이 하나의 국물에 녹아든다. 페어링은 계절과 온도에 따라 다르다. 과실 향 풍부한 전통주 ‘마타리’가 오르기도 하고, 미네랄리티가 살아 있는 부르고뉴 뫼르소나 소노마 코스트 샤르도네가 등장하기도 한다.


국물에 샤르도네를 매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김민성 소믈리에의 답은 명쾌하다. “국물의 감칠맛은 향이 넓게 퍼지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샤르도네의 산도와 텍스처가 그 결을 정리한다.”


보디감은 육수의 온도를 길게 이끈다. 국물의 짠맛, 단맛, 감칠맛 끝에서 미네랄과 버터 노트가 겹친다. 한식과 와인의 화학 실험이다. 입체적이고 논리적이다.

미래 한식의 새로운 언어
주052

머곰 레드 2023 © 주052

레스토랑 이름부터 ‘술 주(酒)’를 품었다. 심재현 소믈리에의 말이 명확하다.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지만, 페어링이 함께할 때 비로소 주052의 세계가 완성된다.” 주052의 음식과 주류는 영혼의 파트너인 셈이다. 


대표 페어링은 울산식 상어 요리(돔베기)와 한국의 머루포도로 국내에서 만든 내추럴 와인, 머곰 레드 2023의 조합이다. 초장의 매운 산미와 상어 고기의 독특한 향. 여기에 마치 잼 같은 딸기와 체리 향이 나는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rley A) 품종 와인이 겹친다. 


첫 맛은 생소하나 한 입 뒤 남는 감칠맛과 가죽 향의 여운은 놀랍다. 생선엔 화이트와인이라는 공식을 비튼다. 미식의 유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주052

논알콜 주류 헤이븐 에덴 스파클링 © 주052

주052의 페어링은 ‘흐름’이다. 코스가 진행될수록 주류도 다채롭다. 산미와 질감의 균형, 온도와 서빙의 조율 등 전통주의 넓은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탁주와 약주, 과실주는 물론 리큐어와 맥주까지 레스토랑 문법 안으로 들인다.


특히, 직접 양조한 막걸리 ‘가이아(Gaia)’가 인상적이다. 쌀과 물, 누룩에 포르치니 버섯, 카다멈, 카카오 닙스를 더했다. 말 그대로 ‘땅의 향’을 구현했다. 드라이한 감칠맛이 페어링의 가능성을 넓힌다.


주052의 페어링은 과거의 것을 새롭게 만든다. ‘미래 한식’의 가능성을 입안의 즐거움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실험실인 셈이다.

스시에 와인을 입히는 법
하시라

하시라 오마카세 © Kzmiddle

하시라 오마카세 © Kzmiddle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입소문이 난 스시 레스토랑. 계절의 흐름을 정교한 스시로 빚어낸 하시라에는 전문 소믈리에가 상주한다. 스시 오마카세 레스토랑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유독 하시라를 찾는 이유다.


김호석 소믈리에는 스시를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여운을 길게 이어주는 페어링을 추구한다. 아침에 들어온 어종, 산지의 상태, 날씨의 습도까지 반영해 매일 달라지는 스시 코스. 페어링은 정해진 코스 없이 ‘그날의 재료’로 결정된다. 


사케는 일본 전통의 뿌리지만, 와인은 하시라만의 또 다른 언어다. “사케는 감칠맛의 미학이고, 와인은 구조의 미학이다. 스시의 결을 새롭게 읽을 수 있다”라고 김호석 소믈리에는 말한다.


대표적인 매칭은 안키모(아귀 간)와 샤토 디켐(Châteaud’Yquem)의 조합이다. 최고의 디저트 와인과 풍미 짙은 안키모의 매칭은 파격적이다. 그 단맛과 점성이 농축된 바다의 맛을 풀어내며 완벽한 균형을 만든다. 


“그렇다고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단백질과 산도의 결합, 숙성에서 오는 아미노산, 산화 톤의 상호작용까지 모두 계산해 페어링한다”는 김호석 소믈리에의 철학에는 과학적 설득력과 미학적 서사가 공존한다.

샤토 디켐 © Kzmiddle

꿀레 드 세랑 화이트와인 © Kzmiddle

하시라의 시그너처인 숙성 전갱이 스시에 미네랄리티 강한 루아르 화이트와인을 매치하면, 스시의 미묘한 산미가 와인의 긴장감과 정확히 맞물리며 새로운 풍미를 자아낸다. 


참치와 피노 누아, 우니와 샴페인, 안키모와 소테른. 언뜻 익숙한 조합 같으면서도 실제로 맛보면 그 풍미는 상상을 넘어선다. 하시라는 고객에 따라 매일 페어링 조합을 바꾸기도 하는데, 이처럼 의외성 넘치는 독특한 페어링이 하시라의 매력이다.


하시라에서는 와인을 찾던 이들이 사케로 넘어가고, 사케를 즐기던 이들이 와인을 탐구한다. 김호석 소믈리에는 이제 차(茶), 발효 음료, 무알코올 증류액까지 연구하며 끊임없이 경계를 허문다. 스시 페어링의 새로운 가능성을 경험하고 싶다면, 하시라로 향하자.

공간으로 표현한 페어링의 서사
솔밤

© 솔밤<p>

© 솔밤

전복을 곁들인 리조또 디쉬&nbsp;© 솔밤<p>

전복을 곁들인 리조또 디쉬 © 솔밤

레스토랑의 공간을 이동하며 식사하는 방식만으로도 솔밤의 다이닝은 특별하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아늑한 응접실 느낌의 ‘드로잉 룸’에서 샴페인 한잔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이후 주방이 보이는 넓은 다이닝 홀로 이동하는 동선 자체가 이미 감각적인 페어링의 일부다. 


“공간이 주는 빛과 공기의 변화 속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와인의 풍미를 느끼도록 의도했다”라고 고동연 헤드 소믈리에는 말한다.


페어링 와인의 첫 잔은 동 페리뇽. 그것도 빈티지 혹은 P2다. 고가의 샴페인을 글라스로 제공한다는 점은 솔밤만의 대담한 선택이다. 고동연 소믈리에의 철학은 명확하다. “주류 가격보다 손님이 첫 잔을 경험하는 순간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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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페리뇽&nbsp;© 솔밤<p>

동 페리뇽 © 솔밤

대표 페어링은 솔밤식 안동찜닭과 다밀라노 바롤로 리스테(Damilano Barolo Liste) 2018 빈티지 제품이다. 간장 베이스의 숙성된 단맛에, 타닌이 강한 이탈리아 와인 네비올로를 매치한다. 


쉽게 떠올리기 힘든 조합이지만 섬세한 풍미가 균형을 이룬다. 간장의 단맛이 타닌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다진 양송이의 흙내음이 피에몬테의 토양을 닮아간다. 네비올로의 숙성 향이 버섯 향과 만나며 생각지 못한 풍미를 만든다.


솔밤은 미식 못지않게 따뜻한 환대와 친밀한 접객으로 유명하다. 고동연 소믈리에를 중심으로 팀원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소믈리에는 서비스 매뉴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손님 개개인의 흐름을 읽고, 감정을 따라가며 서비스한다.” 고동연 소믈리에의 말처럼 솔밤의 와인 서비스는 유연하면서도 정밀하다.


온도, 타이밍, 대화의 호흡까지 일종의 공연을 보듯 서사가 이어진다. 다양하고 엄선된 와인 리스트와 정제된 현대 한식, 그리고 친밀한 환대까지. 솔밤이 만드는 ‘잊지 못할 순간’은 다채롭다.


이정윤(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 푸드 저널리스트)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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