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여름 보양의 비결, 짱뚱어
갯벌의 산삼이라 불리는 수륙양용 생명체, 짱뚱어 한 그릇에 담긴 여름 보양의 지혜.
![]() 강진만의 짱뚱어 (강진=연합뉴스) 3일 오전 전남 강진군 강진읍 강진만생태공원 개펄에서 짱뚱어가 활동하고 있다.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강진만생태공원은 26.2㎢ 갯벌과 0.66㎢ 바다갈대군락지가 펼쳐진 1천131종 생물의 서식처다. 2017.9.3 [전남 강진군 제공] hs@yna.co.kr (끝) |
무더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갯벌 위, 물과 흙이 뒤섞인 세계를 경쾌하게 튕기며 오가는 생명체가 있다. 투박한 외형과 달리 강인한 생존력과 독특한 생태로 주목받아 온 짱뚱어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은 이 작은 물고기를 갯벌 문화와 보양식의 상징, 그리고 삶의 지혜로 대접해 왔다. 조선 후기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서 짱뚱어는 탄도어(彈塗魚)란 이름으로, "물이 빠지면 뛰듯 기어 다니며 뭍과 물을 자유로이 넘나든다"고 기록돼있다.
수륙양용(水陸兩用)의 놀라운 생태는 신기함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신화적 풍경의 일부가 됐다.
전라도와 경상도 남부, 특히 장흥·순천·남해 등의 해안에서는 예로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 짱뚱어탕을 으뜸으로 삼았다. 삼복더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복중(伏中)에는 개고기 대신 짱뚱어탕 한 그릇으로 지친 몸을 다스렸다.
갯벌에서 직접 잡은 짱뚱어를 된장과 갖은 한방 재료와 함께 푹 끓이면, 고소하면서도 진한 감칠맛, 그리고 깊은 영양이 담긴 국물이 완성된다. 어른들은 종종 짱뚱어탕 한 그릇이면 며칠은 허리가 펴진다며, 짱뚱어를 '갯벌의 산삼'이라고까지 일컬었다.
짱뚱어는 특별한 식재료이자, 갯벌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요, 공동체적 음식 문화의 연결고리였다. 장마와 폭염, 노동의 피로를 짱뚱어 한 점에 담아 해소하던 시간, 그것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선 우리만의 생활 미학이다.
◇ 약선에서 바라본 짱뚱어, 몸을 살리고 기운을 북돋우다
한의학과 약선(藥膳)에서 짱뚱어는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며, 신장과 방광 경락에 작용한다고 본다. 보신익정(補腎益精)의 대표 식재료로 꼽혀, 오래전부터 허약체질·요통·관절통·기력저하·소아야뇨증, 그리고 남성의 원기 증강에 두루 쓰였다.
몸이 기운을 잃거나, 소화가 쉽게 안 되는 여름철 입맛 부진, 피로한 상태에도 짱뚱어는 속을 든든하게 덥히면서도 부담을 덜 주는 고단백 보양식이다. 약선 이론에서 짱뚱어는 '온중보허'(溫中補虛)의 표본으로, 더위와 기력 저하에 시달릴 때 가장 이상적인 음식으로 손꼽힌다.
조리 시에는 황기, 인삼, 대추, 마늘, 생강과 함께 푹 고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기는 기운을 북돋고, 인삼은 원기를 채우며, 된장은 독을 제거하고, 들깨는 고소한 맛과 함께 폐와 장의 윤택함을 더한다. 짱뚱어 특유의 점액질과 뼈까지 우러난 국물은 소화기관을 튼튼하게 하고, 한여름 허기진 몸을 속속들이 회복시킨다.
짱뚱어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으며, 칼슘, 철분, 마그네슘 등 풍부한 미네랄을 자랑한다. 특히 타우린(Taurine) 성분이 많아 피로 해소, 간 기능 개선, 혈압 안정에 효과적이고, 불포화지방산 함량도 높다. 이는 짱뚱어가 향토 음식만이 아닌, 현대의 건강 트렌드에 부합하는 '기능성 수산물'로 재조명될 수 있는 근거다.
잦은 에어컨 사용, 냉음식으로 인한 여름철 소화 기능 저하와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짱뚱어 한 그릇은 무엇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보양식이 된다.
◇ 손자병법으로 본 짱뚱어 조리법 속 숨은 전략
'손자병법' 중 '용간'(用間)의 장이 있다. 용간은 정보를 수집하고 적을 심리적으로 공략하는 다양한 첩자 운용의 전략을 다룬다.
"적을 이기려면 적을 꿰뚫어야 한다"는 이 장의 지혜는 짱뚱어를 현대 약선 음식에 응용할 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짱뚱어 요리의 다양한 조리법은 곧 용간의 전략이다. 탕(湯), 구이, 튀김(炸), 찜(蒸), 볶음(炒) 등 다섯 가지 조리법은 마치 '현장 첩자(향간), 내통 첩자(내간), 반역 첩자(반간), 정보 조작 첩자(사간), 귀환 첩자(생간)'의 역할처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짱뚱어의 참모습을 끌어낸다.
![]() 짱뚱어탕 연합뉴스 자료사진 |
먼저 탕(湯)은 정공법의 향간처럼, 약재와 함께 뼈와 살, 점액질을 오랜 시간 푹 우리면 기(氣)를 온전히 우려낼 수 있다. 탕은 깊은 맛과 영양으로 여름철 원기 회복의 중심에 선다.
구이는 숯불에서 노릇하게 구워낸 짱뚱어구이를 일컫는다. 은은하지만 강한 풍미로, 적국 내부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내간을 연상시킨다.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촉촉해 생명력이 살아 있다.
튀김(炸)은 항간을 회유해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게 만드는 반간처럼, 위장된 황금빛 껍질 속에 부드러운 맛을 감춘다. 튀김의 바삭함 뒤 감칠맛은 반격의 전략이다.
찜(蒸)은 서서히 맛이 배어드는 것이 특징이다. 찜은 사간의 침투와 같아, 감정과 심리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깊은 풍미를 끌어낸다.
볶음(炒)은 짧고 강렬한 열로 재빨리 조리해야 한다. 볶음은 생간에 해당, 극한 상황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정보력과 같다. 영양 파괴는 최소화하면서, 기운을 응축한다.
이렇듯, 조리법마다 제각기 다른 맛과 건강의 효과를 꾀하듯, 병법 또한 상황에 따라 전술이 변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손자병법 용간의 핵심은 '정보전'이자 '심리전'이다. 정보가 없으면 맹목이며, 정보가 있으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이는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짱뚱어는 그저 맛있는 생선이 아니라, 여름철 건강과 기력을 위한 지혜의 총합, 그리고 조리 전략에 따라 풍미가 완전히 변화하는 식탁 위의 병법서다.
지칠수록 더욱 전략적으로, 복잡한 세상일수록 기본을 돌아보고, 다양한 방식의 접근과 실천이 필요하다.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병법, 바로 짱뚱어 한 그릇에 담긴 건강과 지혜다. 뜨거운 주방에서 오래도록 땀을 흘려 얻어낸 진국 한 사발처럼, 오늘 우리는 일상이라는 전장에서 나만의 승리를 준비한다.
여름 한철, 짱뚱어로 차린 밥상 위에서 내 삶의 지혜와 건강을 회복하는 것도, 그 자체로 승리의 한 수일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